어릴 때 나에게 ‘시간’은 마르지 않는 샘이었다. 공기처럼 항상 있어서 오늘 자고나면 내일이 있고, 내일이 지나도 그 다음 날이 또 있기에 오늘이 지나가버리는 게 전혀 아쉽지 않은 그런 거였다. 좀 살아보니 시간은 그런 게 아니었다. 한번 써 버리면 그걸로 끝이라 다시 돌이킬 수도 무를 수도 없이 그대로 영원히 이별하게 되고 만다. 하루하루를 잃어가는 게 너무나 아깝고 슬프다. 가수 김광석이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고 노래했던 대상은 연인, 꿈, 젊음 그리고 이 모든 존재들을 데리고 영영 가버리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살아가는 일이란 단지 매 초, 매 분마다 내가 쓴 시간과 이별할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 사물, 상황, 생각, 감정 등과도 이별(상실)하는 일이다.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은 결국 내게서 모든 게 떠나간다는 뜻이다. 이별은 이토록 우리에게 익숙한 일이다. 이별이라는 말 자체가 주는 슬픔 때문에 매일 이별하며 살아가는 인생은 그래서 결국 슬픈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별이 있기에 우리는 새로워지고 성장하고 발전하고 나아간다. 묵은 세포를 버려야 새로운 세포로 몸이 생동하고 어제의 나를 떠나야 내일의 나를 만난다. 그래서 우리는 이별을 피하고 외면하고 부정해선 안 된다. 이별로부터 도망갈 게 아니라 이별을 직시하고 좋은 이별을 선택해야 하는 게 우리 모두의 할 일이다.
 그러나 좋은 이별 그러니까 이별을 잘 하는 법은 어렵다. 김형경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들어 그의 책 <좋은 이별>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이별하는 방법을 모를 뿐 아니라 이별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서점에 가면 사랑에 관한 책은 읽기도 숨찰 만큼 많은데 이별에 대한 책은 찾아내기조차 힘들었다. (책 21쪽)’ 이별을 잘 하는 건 어렵지만 이별을 외면하거나 부정하는 건 쉽다. 우리에겐 이별을 잘 해야 한다는 개념조차 희박한데 이별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흔인 분노, 중독, 우울 등의 후유증은 사회 저변에 널리 퍼져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별이니, 애도 작업이니 하는 일들이 남의 일 같았는데 읽어보니 그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여러 가지가 이별의 부작용이었다는 걸 발견했다.
 "애도 작업의 핵심은 슬퍼하기이다. 우리는 슬퍼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이 딱딱해지고, 몸이 아프고, 삶이 방향 없이 표류하게 된다. 지금까지 열거된 다양한 증상들, 그리고 우울증조차 제대로 슬퍼하지 못해 생긴 결과이며, 슬픔의 왜곡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223쪽)
 김형경 작가는 본인이 직접 정신분석을 받은 후 긴 훈습을 거쳐 체득한 내용을 글로 풀어내는 이다. <좋은 이별>은 그 내용을 정리하여 펴낸 에세이 중 한 권이다. 이 책의 화두는 ‘애도 심리’다. 마음의 병은 소중한 애착 대상과 이별한 후 감정의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는 애도 이론을 기반으로 잘 이별하는 방법을 찾아간다. 저자 개인의 경험과 채집한 사례들, 저자가 여러 문학 작품과 신화 등 방대한 텍스트에서 건져 올린 인간 심리 특히 애도 심리에 관련한 내용을 곁들였다. 저자는 기억과 이야기를 직조하여 우리 일상의 저변에 깔려 있는 나쁜 이별의 생김새를 드러내고 좋은 이별의 방법들을 제시한다.
 이 책을 나에게 권한 지인은 이 책을 여러 차례 읽으며 자신만의 애도작업을 시도했다고 했다. 몇 년 전 시작된 그의 애도 작업은 현재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는 십년이 넘도록 그를 괴롭혔던 자기혐오와 우울증, 무기력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저자가 책에서 언급했듯 우리는 전쟁과 분단이라는 국가적인 트라우마로부터 사회와 가정, 개인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에서 상실의 아픔을 앓고 있다. 그렇지만 그 아픔을 제대로 아물게 할 줄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28쇄에 이르는 <좋은 이별>의 재인쇄 부수는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살아가지만 우린 저마다 이별의 부작용을 달래려고 애쓰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건 아닐까. 

정상미<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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