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호 글,그림, 반달(킨더랜드)출판사

 정진호 작가는 <위를 봐요!>그림책으로 2015년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했다. 볼로냐 라가치상은 아동 문학계의 노벨 문학상으로 불린다. 이번의 신작 <여유 요괴>는 무더위가 기승하는 요즘에 읽기에 딱 좋다. 책 겉표지 그림은 검은 여우가 새빨간 두 눈을 부름 뜨고, 나를 보고 있다. 삐쭉삐쭉 솟아 있는 여우의 털이 살아있는 듯하다. 뾰쪽한 발톱은 오싹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이 겉싸개를 벗기면 빨간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로 ‘여우 요괴’ 제목이 있고, 큰 갓을 쓴 작은 선비가 있다. 뒤표지에는 정말 귀여운 작은 여우가 큰 눈을 뜨고 말똥말똥 보고 있다. 겉과 속이 다른 여우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책의 글은 ‘옛날 옛적에 하늘에서 정기 받고, 땅의 기운 담아 천하무적 도력을 닦은 여우 요괴 한 마라가 살았는데’라고 시작한다. 그림은 아홉 개의 꼬리가 흔들거리는 모습만 있다. 꼬리마다 숫자가 있다. 여우의 전체 모습이 아닌 꼬리 아홉 개만 보이니 여우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재미가 있다. 여우는 간 천 개를 먹으면 무슨 소원이든 이룰 수 있어 닥치는 대로 간을 먹고 있다. 여우 요괴에게 간을 빼앗긴 동물들의 모습이 콜라주로 표현되어 있어, 판화와 콜라주가 어울려 퓨전 공연을 보는 듯하다. 구백구십구 개의 간을 먹은 여우 요괴. 마지막 간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인간의 간을 먹고 싶다. 인간 중에서 가장 큰 간을 갖고 있다는 김 생원을 찾아간다. 소문대로 간이 큰 김 생원은 여우 요괴를 보고 도망도 가지 않고 한숨을 쉰다. 무덤에서 하룻밤을 지내면 간이 더 커질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한다. 무덤에서 살아남은 김 생원은 호랑이 입안에 머리를 넣어보는 간 큰 행동을 하는데, 살아남는다. 마지막으로 김 생원은 여우 요괴와 결혼을 하면 큰 간이 되니 그때 먹으라고 한다. 여우 요괴는 색시로 변신하고 김 생원과 혼례를 치른다. 여우 요괴는 김 생원의 간을 빼 먹지 않고 하루 이틀 부부의 인연을 유지한다. 김 생원이 나이 들어 죽는 날에 내 간을 빼서 이루고 싶은 소원을 이루라고 말할 때 책 표지에서 봤던 빨간 눈에 피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누구나 알고 있는 구미호 이야기가 새롭게 탄생했다. 호러+판타지+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이 그림책은 세 색-빨강, 검정, 흰색만이 있다. 그러나 김 생원과 여우 요괴의 감정이 충분히 표현된다. 신기하다! <여우 요괴>에서 눈길이 가는 인물은 김 생원이다. 눈을 반쯤만 뜨고 있는 그의 표정은 변함이 없지만 각 장면에서 다양한 감정이 보인다. 특히나 혼인 후 여우 요괴를 등에 업고 걸어가는 장면에서는 여러 감정이 느껴진다. 내 간을 내어 줄 정도로 소중한 사람을 만났다. 정말 간 쓸개를 내어주는 삶을 사는 것. 원 없이 사는 것을 선택한 김 생원! 지금 우리는 원 없이 살고 있는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남들이 하니까, 옆 사람이 원하니까 살고 있지는 않을까?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을 질문이다. 
 다시 그림책을 펼쳐본다. 면지에 나온 여러 산등선은 여우 요괴가 수많은 간을 먹으면서 보낸 시간 같다. 천하무적인 여우 요괴가 간 천 개를 먹으면서까지 간절하게 이루고 싶은 소원은 무엇일까? 책을 덮으면서 김 생원이 여우 요괴와 손을 잡고, 흰 눈 위를 걸어갈 때 한번 클로스 되는 부분이 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클로스 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클로스 되는 지점을 만나게 된다. 그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린다면, 그 지점은 내 인생에 다른 장르를 만들어줄 것이다. 호러? 로맨스? 판타지?

최소은(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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