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동화작가>

우리나라에 이런 가마솥이 있다. 지름 5.68ｍ, 높이 2.2ｍ, 둘레 17.8ｍ, 두께 5㎝,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가마솥이다. 조선 시대나 고려 시대 그 이전의 시대에 이 가마솥이 태어났더라면 그야말로 민족의 자긍심은 물론 국보로 지정되었을 것이다.
솥뚜껑에는 여의주를 문 두 마리의 용이 금방이라도 승천을 할 모습이고, 주위엔 무궁화와 거북이가 조각되어있다. 12개의 화구가 있고 쌀 50가마를 안치면 4만 명이 먹을 수 있다는 어마어마한 가마솥이다. 제작에 들어간 주철만 43.5t에 이른다.
2003년 당시 괴산군 김문배 군수의 작품이다. 군민화합을 도모하는 취지로 지자체 예산과 성금 등으로 2년의 제작 기간을 거쳐 2005년 그 모습을 드러낸 가마솥이다. 이 가마솥은 세계 최대를 홍보하며 기네스북에 도전했으나, 호주의 더 큰 질그릇에 밀려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더 웃기는 것은 밥을 하면 가마솥 아래는 탄 밥, 위는 설익는 3층 밥이 되곤 했다. 가마솥의 기능을 애초부터 상실한 전대미문의 가마솥이 되고 말았다.
정말 군민화합을 위하는 그 마음 하나로 만들었을까? 괴산군은 1읍 10면으로 현재 인구가 36,000여 명, 우리나라 국토의 중앙에 위치, 전국 2시간대로 교통이 아주 편리한 곳이다. 산막이옛길, 충청도양반길, 화양.쌍곡구곡 등 산세가 아름다워 꽤 알려진 관광지가 있는 곳이다. 과연 이런 곳에 군민화합용 가마솥이 필요했을까? 개인 한 사람의 과시욕으로 빚어진 것은 아닐까? 결국, 이 가마솥은 지방자치단체의 대표적인 예산 낭비 사례로 지목되는 불명예까지 안았다.
충청북도가 나섰다. 도는 지난 12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괴산 가마솥 관광자원화 활용 방안’ 찾기 아이디어 공모를 시행했다. 최우수 작 100만 원, 우수 각 70만 원 등 상금까지 제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웃기는 그야말로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발상이다. 얼마나 애물단지 신세였으면 이런 코미디 같은 공모까지 시행해야 했을까?
어디 괴산의 가마솥뿐이랴. 경남 통영시가 자랑했던 ‘1592년 거북선’도 오명만 뒤집어쓴 채 사라져버렸다. 지난 11일 거북선을 부숴 나무는 불태우고 쇠는 고철로 처분했다.
경남도는 2008년 거북선 제작을 추진했다. 거창하게 시작을 했다. 임진왜란 당시의 거북선을 자세히 고증해서 제작하고, 재료도 당시와 같은 금강송을 사용한다는 뜻으로 ‘1592년 거북선’이라고 명명까지 했다. ‘1592년 거북선’은 16억여 원을 들여서 2011년 완성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수입 소나무를 81%가량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명품이라는 자랑은 하루아침에 ‘짝퉁 거북선’으로 불명예를 안았다. 게다가 바다에 띄운 거북선은 그야말로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거북선 안으로 물이 차오르면서 선체가 옆으로 기울어지고 말았다. 지하의 이순신 장군이 불같이 화를 내며 벌떡 일어날 일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예산 낭비 사례를 지자체별로 살펴보면 끝이 없을 정도이다.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수십억, 수백억 원의 세금을 낭비한 사업이 지자체마다 널브러져 있다.
전국 243개 광역.기초지자체의 재정 자립도가 평균 45%에 그친다. 재정 자립도가 30%를 밑도는 지자체는 무려 190곳이 넘는다. 이런데도 지자체마다 보여주기식 행정에 돈을 펑펑 쓸 수 있는 그야말로 기막힌 통로가 있다. 바로 정부가 주는 지방교부금 제도이다. 이 교부금을 쌈짓돈 삼아 개인 치적 쌓기나 선거용 사업에 올인하고 있으니 안 봐도 비디오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1000조 원을 넘어선 상황이다. 정부에서 매년 수십조 원을 받아 쓰는 지자체의 세금 낭비는 나랏빚 부담을 가중시킬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 무용론에 불을 지피는 원인 제공이 된다.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지 햇수로 32년이 됐지만, 여전히 지방자치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얘기가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게 현실이다.
각 지자체의 예산 낭비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지자체 사업의 타당성 검증을 더욱 강화하고, 이에 반하는 지자체장에겐 무거운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 환수 조치까지 해야 한다. 곪을 대로 곪은 환부는 도려내는 것이 상책이다.

안산신문  ansansm.co.kr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