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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온 뒤 
  • 안산신문
  • 승인 2023.09.1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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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트레버

윌리엄 트레버는 “영어권의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단편 작가(뉴요커)”라는 평을 받은 작가다. 얼마나 글을 잘 쓰기에 그런 수식이 붙었을까? 트레버는 체호프, 모파상, 조이스의 뒤를 잇는 작가이자 ‘작가들의 작가’로 불린다.
 “나는 단편소설이 순간을 포착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장편 소설이 복잡한 르네상스 그림과 같다면, 단편소설은 인상파 그림입니다. 그것은 진실의 폭발이어야 하죠. 그것의 힘은 넣는 것만큼이나 빼는 것에 있어요. 그것은 무의미함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과 관련이 있지요. 인생은 대부분 시간이 무의미합니다. 소설은 그러한 인생을 모방하지만, 단편 소설은 앙상하고 방황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필수적인 예술입니다” 
 트레버가 1989년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소설 <비 온 뒤>는 작가가 한 말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1996년에 출간하여, 그해 <뉴욕 타임스> ‘올해의 책 8권’에 선정되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단편 <비 온 뒤>를 비롯하여 <조율사의 아내들>, <아이의 놀이> 등 총 12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책이 출간된 뒤 시간이 꽤 흘렀지만 지금 읽어도 세련된 문체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조율사의 아내들>은 피아노 조율사인 맹인의 두 번째 아내 벨의 시간에서 쓰여졌다. 벨은 조율사를 사랑했지만 조율사는 바이얼릿을 선택했다. 바이얼릿이 죽자 거의 40년에 가까운 결혼 생활이 끝났고, 그 때까지 처녀로 살던 벨과 재혼을 하게 된다.
 “꽃밭을 돌보아주면 바이얼릿에게 굴복하는 걸까? 프라이팬과 나무 숟가락 세 개를 버리면 속 좁게 구는 걸까? 벨은 무엇을 하든 나중에는 자신을 의심하게 되었다.” (18쪽) 
 질투는 여자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현실을 옭아매는 골치덩어리다. 벨은 젊은 시절부터 나이들 때까지 바이얼릿을 질투했고, 바이얼릿이 죽어서도 질투했고, 결혼한 지금도 질투를 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여자는 마음 속에 질투를 품고 사는데 <조율사의 아내들>은 사랑에 있어서 떨칠 수 없는 질투를 잘 담아내어 정말 인상파 그림처럼 표현했다.
 “벨이 자기주장을 하는 것을 탓할 수 없었고, 그런 주장에 따라 피해를 입거나 파괴당하는 뭔가가 생기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 늘 이기는 법이니 결국에는 벨이 이길 터였다. 그 또한 공정해 보였으니, 바이얼렛은 처음에 이겨 더 나은 시절을 누렸기 때문이다.” (27~28쪽) 
 트레버는 작가로서 가져야할 균형 감각이 뛰어나고 객관적이면서 시원하게 세상을 보여준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첫 단편을 보고 트레버의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이다. 섬세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트레버의 작품에 흠뻑 빠질지도 모른다.
 <아이의 놀이> 속 제라드와 리베카는 각각의 가정의 이혼과 재혼으로 남매가 된 아이들이다. 
 “평화조약의 무력한 관계자들로서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함께 있게 되자 둘은 동무가 되었다. 그들은 과거를 그리워했고, 원한과 박탈감 때문에 가까워졌다.(중략) 제라드와 리베카는 그들 나름의 결혼과 이혼 놀이를 했다. 이것은 비밀 놀이가 되어 누가 들어오면 입술에서 말이 희미해지고 예의 바른 태도가 기만을 감추었다.” (84쪽) 
 열 살, 아홉 살인 아이들은 괴로웠던 상황을 놀이극으로 표현한다. 부정한 일을 저지른 어른의 모습과 흑백영화 속 대사를 흉내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ㅤㅁㅕㅁ 처음에는 기가차서 헛웃음이 나오지만 아이들의 슬픔을 읽게 되는 순간 가여워지고 처연해진다. 어린 아이들이 어른들의 관계과 변화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아이들은 자란다. 상처를 입었을지라도 찢긴 살에는 새살이 올라온다. 
 소설집의 타이틀인 <비 온 뒤>는 이별을 겪은 해리엇이 여행을 하면서 느끼고 깨닫는 일을 담은 단편이다. 커다란 사건이 있는 건 아니지만 해리엇의 감정과 풍경 묘사가 마치 읽는 사람을 그 휴양지로 데려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녀가 사랑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자,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상황을 바꾸려고 더 밝은 현재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래의 불변성을 강요하자, 그는 다른 남자들처럼 물러섰다. 그녀는 그녀 자신의 피해자였다.” (141쪽) 
 사랑에는 정답이 없다. 젊은 날, 떠나는 사랑이 이해하기 어려웠고 혼란스러웠던 적을 기억한다. 사람들은 정답 없는 사랑에 정답을 찾기 위해 괴로워하고 아파한다. 결국에는 덮고 살아간다. <비 온 뒤>는 매번 겪어도 사랑 때문에 아픈 여인이 고독을 통해 성숙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름의 열기가 다 식지 않은 가을의 첫 무렵, 아직 휴가를 가지 못했다면 단편 소설 <비 온 뒤> 속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김아름<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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