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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기고]구슬땀이 보석으로 빛나던 날
  • 안산신문
  • 승인 2023.10.1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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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훈<국민의힘 상록갑 당협위원장>

구슬땀이 비 오듯 이마에서 흘러내렸다. 가마솥 화덕에서 내뿜는 열기와 대형 들통 안의 음식이 만들어지며 나오는 수증기는 쉴 새 없이 눈 속을 파고들었다.
대형 들통 안에서 익어가는 음식은 짜장면 소스였다. 대형주걱으로 짜장면 소스가 바닥에 늘어 붙지 않게 저어야 하는 것도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흘린 구슬땀의 양에 비례해 구수한 짜장면 소스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힘든 봉사활동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은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짜장면 소스의 맛있는 냄새가 상록수역에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상록수역을 오르내리는 손님들이 따뜻한 미소로 바라보며 휴대전화로 찰칵찰칵 모습을 담는 모습도 내게는 큰 힘이 되었다.
10월 13일 ‘사랑의 짜장차’가 상록수역 일원에서 행사를 가졌다. 독거노인 등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에 짜장면을 대접하는 소중한 행사였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사랑의 짜장차’ 행사에 참석했다.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자리에 앉고 배식 작업이 시작되었다. 어르신 앞에 짜장면이 놓일 때마다 “어르신, 맛있게 드십시오. 그리고 꼭 건강하세요.”라는 말이 입에 붙어 나왔다. 비록 짜장면 한 그릇이지만 평생 건강과 행복 가득 누리시라는 보약 짜장면을 드리는 마음으로 임했다.
봉사활동을 끝내며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봉사활동에 참여한 자신이 뿌듯했다. 짜장면 봉사를 위해 함께 구슬땀을 흘린 봉사단원들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게 보였다. 힘든 모습을 전혀 내색하지 않는 봉사자들의 모습에 힘든 생각을 한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얼굴 가득 웃음을 지으며 돌아가시는 어르신 뒤로 어린 시절의 짜장면 추억이 떠올랐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의 짜장면은 최고로 먹고 싶었던 음식이었다. 졸업식과 생일날 같은 기념일이면 부모님은 중국집으로 데리고 가 짜장면을 사주셨다.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용돈을 모아 중국집을 들어갈 때는 마치 개선장군이 된 기분이었다. 짜장면이 나오기까지 나무젓가락을 쪼개 양 손바닥으로 비벼 가지런히 식탁에 놓고 기다린다. 짜장면 소스 만들어지는 냄새에 허기를 참지 못하고 단무지 한 조각을 입에 물며 서로 킥킥대던 모습도 떠오른다. 기다리다 나온 짜장면을 비벼 한입 가득 넣는 순간의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다. 군 생활 시절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도 짜장면이었다. 대표적 서민 음식으로 꼽히는 짜장면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짜장면 가격은 1970년 초기 200원에서 현재 7000원 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물가가 올라도 참 많이 올랐다.
영화에서도 주인공들의 짜장면 먹는 모습이 내겐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런 영화를 보고 온 날이면 짜장면을 꼭 시켜 먹곤 했다. 특히 존경하는 등산가 허영호 씨의 짜장면에 관한 말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1991년 북극해 횡단을 3개월 만에 마친 허영호 씨는 인터뷰에서 가장 먹고 싶은 음식으로 짜장면을 꼽았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짜장면을 즉시 배달시켜 먹었던 웃지 못할 기억도 새롭다.
‘사랑의 짜장차’는 평소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봉사단체다.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 짜장면을 제공하는 그야말로 천사 같은 일을 하는 단체이다. 이러한 봉사단체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는 밝고 아름다워진다. 사회가 밝고 아름다워야 나라가 건강해지고 미래로 비상할 수 있다. 이러한 단체 활동에 내 작은 힘이 힘든 어르신들에게 보탬이 되었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했다. 돌아오는 길, 몸과 마음이 피곤했지만 내가 흘린 구슬땀이 보석으로 빛나던 봉사활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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