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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유산은 평화
  • 안산신문
  • 승인 2023.11.0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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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서, 나는 내가 그렇게 많은 것을 받은 줄도 몰랐다. ‘받은 사람이 받은 줄도 모르게 하는 것’, 그것조차 명인의 솜씨에서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이었다. 할머니에게 배운 사랑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주는 평화’일 것이다. 그 사랑은 평화였다." (6쪽)
  세상이 복잡해져갈수록 사랑도 복잡해지는 것일까. 사랑의 방식도 모양도 나날이 복잡하고 어려워져서 급기야 청춘들은 사랑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가 숨 쉬듯 입에 올렸던 사랑이 이 지경일진대 평화의 형편은 더 어렵다. 옆 사람에게 ‘사랑’을 물어보면 대충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듯 무언가를 생각하다 몇 마디라도 답하겠지만 ‘평화’를 물어보면 대번에 물음표가 선명한 낯으로 되물어 올 것이다. “평, 평화요? 세계 평화, 그런 거?”
  그런 우리들의 시대, 그러니까 사랑도 평화도 그 실제는 간데없이 단어로만 존재한다고 해도 무방한 현 시대에 ‘사랑이 주는 평화’라는 표현은 무척이나 생소하고 낯설다. 그런 사랑을 줬다는 저자의 할머니는 마더 테레사와 같은 성인인가 싶고, 저자 개인의 기억을 너무 과장하고 미화하여 이런 책을 쓴 건 아닌가라는 아니꼬운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그녀의 할머니가 베풀었던 소박하고 단순한, 마치 달항아리처럼 간결하고 담백한 사랑의 행위들을 체험하고 나면 저런 생각들이 얼마나 무식하고 몰지각한 것인지 뉘우치게 된다. 
  "할머니는 어린아이가 자라는 온갖 비뚤빼뚤한 모습을 모두 ‘예쁘다’고 요약했고 분투하는 모습은 ‘장하다’고 했다. 어른이건 아이건 하는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입술을 삐죽이며 ‘별나다’고 했다. 더 나쁘면 ‘고약하다’였다. 할머니가 사용했던 어휘들이 수적으로 적은 반면 매우 정확하고 강력한 일관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78~79쪽) 
  "나는 할머니가 된다고 한 것, 안 된다고 한 것이 이후의 결과나 할머니의 기분에 따라 변하는 것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다. 예전엔 안 됐던 것이 이번에는 되는 일도 없었다. 할머니에게 되는 것은 한결같이 되고 안 되는 것은 늘 안 되었다." (105쪽)
 요즘은 미디어도, 정보도, 말도 지나치게 많아서 문제다. 유행은 또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취향은 어찌나 변덕스러운지. 잡다한 앱이 잔뜩 깔린 스마트폰, 다 사용하지도 못하는 온갖 기능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탓에 배터리는 순식간에 닳고 쉽게 느려지고 마는 스마트폰이 요즘 우리들의 신세 같다. 이제 우리는 정말로 단순해져야 할 때가 왔다. 하지만 복잡하고 번다한 것에 익숙해 있는 우리에게 단순하고 간결함이란 실로 어려운 일이다. 오죽하면 예술가나 기업가들조차 ‘Simple is the Best!’라며 단순함은 명인의 경지라고 이야기했을까. 그러니 여기, 사랑의 명인이라고 부를만한 저자의 할머니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했는지를 주목해보자. 할머니는 말은 단순하고 행동은 일관성 있게, 분명하게 공감 해주고 넉넉한 잣대로 장하게 여겨주었다. 그런 어른의 옆에서 아이는 몇 천억의 재산이나 휘황찬란한 외모 같은 걸로는 얻을 수 없는 평생의 안정감, 일생의 평화를 체험하게 된다. 이 평화의 힘은 아이가 성장하고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온갖 두려움과 절망, 세상이 주는 상처들을 이기고 자신의 기량대로 일생을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의지를 준다. 
  저자는 그녀의 할머니가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손쉽게, 일상적으로 해낸 사랑의 행위들을 세상과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부모와 자녀 모두를 어렵게 만드는 번잡한 사랑법이 아니라, 모두가 크게 애쓸 것 없이 그저 편안하게 사랑하는 방식도 있다는 걸 이 책은 보여준다. 세상에 별처럼 많은 육아법, 사랑법 중에서 할머니의 방식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건 분명하다. 지금 우리는 사랑을 말하면서 무얼 놓치고 있을까? 우리의 사랑은 평화를 남기고 있을까?
  "좋은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차원 높고 아름다운 것은 바로 ‘편안함’이라고 생각한다.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여러 가지 두려움을 떨치게 해주는 것. (중략) 부담없는 편안함은 아이가 받은 것들을 가지고 마음껏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내면적 지원이다." (202쪽)   

정상미(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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