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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라는 치료 약
  • 안산신문
  • 승인 2023.11.1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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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소설가>

 지인들과 한나절 등산을 했다. 다리가 부실한 나는 맨 뒤에서 절룩이며, 친구의 부축을 받아 가며 천천히 올랐다. 낮은 산이서 1시간여 만에 정상에 올랐다. 산 아래를 바라보니 내가 살아온 세월이 저렇게 가파른 것처럼 느껴졌다. 세월이라 말할 만큼 나이를 먹은 것이 씁쓸하다.
 산 위에서 맹렬하게 울리는 전화를 받으니 고향 친구의 부고다. 아픈 것은 알았으나 이렇게 갑자기 가 버릴 줄 몰랐다. 차표를 예매하고 허둥대며 산에서 먼저 내려왔다. 차분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기차에 오르면서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검은 옷을 입었지만 나는 눈물 자국을 감추느라 선글라스를 쓸까 고민했다.
 오후 늦게 빈소에 도착하니 친구의 영정사진이 나를 반긴다.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장례식장에 앉은 친구들은 멀리서 오는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이 무슨 조화인가? 살아있는 우리는 만나서 반갑다. 부고가 우리를 한곳으로 모았다. 삶과 죽음이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옆에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육개장을 먹고 옛날이야기에 신이 났다. 벌써 술에 취한 한 친구는 가족보다 더 서럽게 울고, 한쪽에서는 웃고 떠든다. 이 풍경 자체가 너무 낯익고 낯설어서 나는 자꾸 눈물이 났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과잉 감정 상태에 빠져 눈물이 날 수 있는지? 나는 한 구석에서 인터넷을 검색하고 있었다.
 눈물의 성분은 염소와 나트륨이 대부분이고, 나머지는 단백질, 칼슘, 칼륨 등이다. 물론 주체는 수분이다. 사람은 울지 않아도 먼지나 티 같은 것으로부터 안구를 보호하기 위해 하루 0.6cc의 눈물을 분비하고 있는데, 울 때는 교감신경이나 부교감신경이 자극받아 눈물을 흘리라는 명령이 전달된다.
 이 두 가지 신경은 문자 그대로 감정에 크게 좌우되는 것이지만, 각각 업무를 분담하고 있다. 평정 시와 분노하고 있을 때는 교감신경이, 기쁠 때와 슬플 때는 부교감신경이 작용한다. 또 한 가지 차이는 교감신경이 작용했을 때의 눈물은 칼륨 이온과 수분이 적고, 부교감신경이 작용했을 때는 그것들이 많아진다. 즉, 교감신경에 의한 분노의 눈물, 억울한 눈물은 수분이 적으므로 맛이 진하고 짠맛도 많다. 한편 부교감신경에 의한 슬픈 눈물이나 기쁜 눈물은 약간 싱겁다. 그러니까 눈물은 언제나 짭짤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눈물도 짜거나 싱거운 것이 있다는 것이다.
 단지 감정의 산물인 내 눈물이 싱거운지, 짠지 맛볼 생각이 없다. 눈물에 관해 설명한 글을 보면서 나는 피식 웃었다. 그 모습을 언제 봤는지 맞은 편에 앉은 친구가 퉁퉁 부은 눈으로 “너는 장례식장에 와서 뭘 혼자 보며 웃느냐?”고 질책을 했다. “너 눈 보니까 안 그래도 작은 눈이 퉁퉁 부어서 아예 안 보인다. 그래서 웃었다.” 친구에게 구구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내 눈가도 부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부은 눈을 마주 보며 웃었다. 그래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능력도 갖췄다.
 특별히 인간을 우월한 동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인간만이 웃을 수 있다는 사실에는 왠지 어깨가 으쓱해진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 으쓱한 어깨가 바싹 오그라드는 느낌이 든다. 얼마나 슬픈 사연이 많은 동물이면, 얼마나 눈물 나는 사연들로 휘몰아쳐졌으면 신이 인간이라는 종족에게만, ‘웃음’이라는 치료 약을 처방해줬을까? 눈물과 반가운 웃음을 맛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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