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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그리고
  • 안산신문
  • 승인 2023.12.06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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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소설가>

 너무나 바쁜 나날이었다. 하루에 몇 가지 업무를 소화하느라 잠을 줄였다. 너무 바쁜 나머지 업무에 혼선이 와서 정리하느라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 와중에 어떤 사람과의 관계도 삐끗거렸다. 무시하라고 했지만 계속 나의 신경을 자극하였다. 휴식이 필요하다고 몸이 신호를 보내왔다. 나는 그 신호를 무시했다.
 갑자기 시골의 작은 병원에 입원했다. 모든 일을 멈췄다. 적막하고 평화로운 시골병원 시설은 좀 열악해도 의사도 간호사도 친근감이 갔다.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요양하면 몸이 치유될 것 같았다. 내가 꿈에 그리던 시간이 주어졌다. 금식의 명령으로 온전히 나에게 주어진 24시간은 수액을 맞는 손의 불편함은 있지만, 온전히 자유의 시간이었다. 누워 있거나 책을 읽거나 병원 복도를 산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의 치료는 금식으로 인하여 배가 고픈 것을 느끼는 일이었다. 3일을 금식해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식욕은 있으나 배가 고프지 않음은 고통이었다. 평소에도 배고픔을 느낀 적이 없는 나의 위는 자주 경련을 일으켰다. 핑계는 많았다. 우선 가족력을 들을 수 있는데 부계에 이르는 위장질환이다. 불규칙한 식습관과 무리한 다이어트도 몸을 괴롭히는 원인이다. 또 커피는 얼마나 많이 마시는가? 물은 잘 마시지 않고 커피만 하루에 몇 잔씩 마시는 습관이 몸을 망가뜨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실 담배 피우는 남편에게 끊으라고 타박을 하면서 나의 커피양은 더 늘어나고 있다.
 영화 ‘3일간의 휴가’에서는 주인공 딸은 미국에서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시골에 돌아와 엄마가 운영하던 백반집을 보수하여 운영한다. 새하얀 눈이 내려앉은 고즈넉한 시골 풍경에 탁탁 내리치는 칼질과 보글보글 끓는 물, 타닥거리는 장작 소리가 평화로웠다. 덜컹거리는 의자를 손수 못을 박아 고치고, 먼지가 쌓인 시골 백반집 딸(진주)은 엄마의 솜씨를 기억해내며 엄마의 음식을 만들어 낸다.
 장독대에 묻은 김치의 아삭함을 언급했던 복자의 말을 기억해 손님에게 스팸 찌개를 끓여내고, 어릴 때 만들어 먹었던 무 만두를 만들어 먹는 장면에서 입에 군침이 돌았다. 내게도 추억의 음식은 있다. 고소한 배추전이나 납작만두를 곁들이고 볶음우동이 간절히 생각났으나 지금의 나는 흰죽만 먹는 신세다. 그리고 입맛은 살아 있는데 여전히 배는 안 고픈 게 문제다.
 영화에서 엄마인 복자는 저승에서 3일간의 휴가를 얻어 딸을 만나러 오지만, 엄마의 휴가가 아니었다. 딸을 위해서 희생하고 그저 살아내기 급급했던 복자의 삶이, 3일간의 휴가에서도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지 못하고 딸의 마음을 읽고 미안해하기만 했다. 이렇듯 엄마라는 역할은 인생에서 쉼과 자신만의 휴가가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엄마가 자신만의 휴가나 온전한 쉼을 잘 사용하지 못한다.
 열심히 산다는 것은 나를 다그치는 일이다. 느리게 여유롭게 사는 일이 죄악시되던 시절을 살아와서인지 나를 위해 여유를 부리면 뭔가 불안하고 허전했다. 운동도 일처럼 열심히 하고, 책도 공부하듯 읽고, 글쓰기도 숙제처럼 하고, 집안일도 완벽하게 해야 했다. 결국은 모든 것을 잘해야 한다는 욕심이다. 부족한 잠을 야행족이라 얼버무리며 부지런하다는 말을 훈장처럼 붙이고 사는 삶. 나를 돌아보고 모든 것에서 조금 느슨하게 해야 한다는 경고를 받은 것이다. 과연 나는 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을까? 더 입원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무시하고 3일 만에 퇴원해버린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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