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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 소년
  • 안산신문
  • 승인 2023.12.1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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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소설가>

 이 아파트로 이사 온 지 딱 1년이 지났다. 이제야 조금 적응이 되는데, 아직 적응하지 못하는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시도 때도 없이 소리를 내는 화재경보기다.
 새벽 2시에 화재경보기가 “화재가 났습니다. 대피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앵하고 소리가 난다. 자다가 놀라서 거실로 나와 바깥 상황을 살핀다. 진짜 불이 났으면, 소방차가 오고 사람들 대피하는 소리 등 소란이 일어날 것인데 창밖으로 보이는 외부상황은 고요하다. 잠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대피를 해야 하나 하고 망설이고 있으면 다시 한번 화재경보가 울린다. 이제는 가족 중 한 명이 옷을 갈아입고 1층까지 가서 상황을 제대로 살피러 나간다. 엘리베이터도 순조롭게 운행하고 복도도 조용하다. 아파트 전체를 둘러보아도 불 켜진 집은 많아도 불이 난 집은 없어 보인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탄다. 아까 내려갈 때 멈춰진 1층에서 순조롭게 15층까지 올라온다. 이번에는 관리실에서 방송을 한다. 놀랄 만큼 큰 목소리다. 몇 동에서 오작동 되었으니 안심하고 자도 된다고 길게 설명을 두 번이나 한다. 해명을 듣는데 짜증이 난다. 도로 들어가 자려고 하면 다시 관리실 방송이 나온다. 이 소동은 적어도 30분은 지나야 마무리된다. 아파트 주민 전체가 잠을 설치는 밤이다.
 이 화재경보기는 낮이고 밤이고 시도 때도 없이 울린다. 처음에는 가슴이 뛰고 두렵고 놀랐으나 자꾸 반복되다 보니 이젠 1층으로 내려가는 일은 안 한다. 그저 거실로 나와 관리실에서 오작동 되었다는 방송을 듣고 일상생활을 한다. 어느 날은 모임을 우리 집에서 하고 있는데 갑자기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우왕좌왕하는 지인들에게 괜찮을 거라고 가만있어도 된다고 말하는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며칠 전에는 엘리베이터 벽에 화재경보기가 자주 울리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해명을 적어 놓았다. 그 이유 중에는 이렇게 소리가 나는 것이 오히려 안전하게 잘 관리되고 있다라는 말 같지 않은 말도 있었다. 진짜 불이 났을 때 우리는 아무도 대피하지 않을 것이다. 그걸 생각 못 한 관리실의 우치만 어떻게 탓하랴.
 안전불감증은 위험을 감지하더라도 ‘그렇지 않을 것’ 혹은 ‘나는 괜찮을 것’ 따위의 생각으로 안일하게 대처하는 자세를 말한다.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걸 모르지는 않지만 '아닐 것'이라고 합리화하는 데 익숙해진 것이다. 이 때문에 자연재해 등이 발생해 목숨을 위협받거나 이에 준하는 상황에 있어도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 행동하는 것과 똑같이 행동을 취할 수 있다. 안전보다 다른 걸 우위에 두고, 안전을 뒷전이나 낭비 따위로 치부하는 행동을 말한다.
 하인리히 법칙은 어떤 상황에서든 문제가 되는 현상이나 오류를 초기에 신속히 발견해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초기에 신속히 대처하지 못하면 큰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 이러한 하인리히 법칙을 정리하면 사소한 것이 큰 사고를 초래한다. 또 작은 사고 하나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연쇄적인 사고로 이어진다.
 이렇게 하인리히 법칙에 부합하는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대형 사고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이태원 사고, 세월호 사고, 삼풍백화점 사고 등 꾸준하게 일어난다. 수많은 전조증상이 있었어도 괜찮을 거라 믿고 생긴 결과이다. 이러한 하인리히 법칙은 인터넷 시대인 현대로 올수록 잠재적인 불만 고객, 즉 ‘사고당할 뻔한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파급력이 더욱 커진다. 오늘 밤 편안하게 잠들기 위해서 이제 행동을 해야 한다. 화재경보기를 점검하고 교체하는 등 조치를 하라고 관리소 소방서 등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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