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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 안산신문
  • 승인 2023.12.2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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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맥 매카시의 장편소설 ‘로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재앙이 세상을 덮쳐 해가 빛을 잃고 도시는 대부분 타버려 모든 것이 재와 먼지로 덮인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 서로가 세상의 전부가 돼버린 남자와 소년은 ‘황폐하고, 고요하고, 신조차 없는 땅’을 몇 년 동안 걸으며 남쪽을 향한다. 다만 남자는 소년에게 “우리는 불을 옮기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뿐이다. 

  ‘제가 죽으면 어떡하실 거예요? / 네가 죽으면 나도 죽고 싶어. / 나하고 함께 있고 싶어서요? / 응. 너와 함께 있고 싶어서. / 알았어요.’ 
 생맹체는 대부분이 사라지고 먹을거리와 잠자리를 찾아 걸으며, 수시로 인육을 먹는 약탈자 들도 경계해야 하는 삶 속에서 소년은 남자에게 이따금씩 묻는다. 추위와 배고픔에 지치지만 그가 살아가는 건 소년이 있기에 그렇다. 남자는 “그래도 우리가 아직 여기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지만 우린 아직 여기 있잖아.”라고 소년을 다독이며 한발 한발 나아간다.  
  소설은 코맥 매카시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는 아들이 아홉 살일 때 함께 여행을 떠났다. 낡은 호텔에 머무르던 밤 그는 창가에서 마을을 내려다봤다. 어둠에 가려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고 오직 기차 소리만 들렸다. 그는 100년 후엔 마을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상상했다. 산 위로 불길이 치솟고 모든 것이 다 타버린 풍경이 떠올랐다. 그는 잠든 아들을 바라보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 속 남자도 그들의 목적지인 남쪽이 폐허가 되었다고 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 아이가 신의 말씀이 아니라면 신은 한번도 말을 한 적이 없는 거야.’ 폐허가 된 세상에서 그가 찾은 구원이다. 
  소설 속 남자의 생의 이치는 간단하다. 너를 위해 산다. 나 혼자 살기에는 ‘너무나 외롭고 외로워서...’ 너의 온기에 의지해 너의 심장박동에 감사하며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눠준다. 폭포 옆은 먹을 것도 물도 땔감도 얻을 수 있어 소년은 좀 더 머무르고 싶어 하지만 남자는 소년을 작은 위험에도 두고 싶지 않다. 욕심은 멸망을 불러온다. 풍요롭던 세상이 하루아침에 멸망하게 된 많은 이유들 중 한 가지는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일 것이다. 
‘신은 지키고자 하는 자에게 길을 열어주시지만 외면하고자 하는 자에겐 재앙을 내릴뿐이다.’ 신은 ‘서로를 사랑하라’고 했다. 소년은 남자의 혈육이 아니다. 다만 아이가 앞에 아이가 있었고 아들을 삼았을 뿐이다. 소년과 남자는 증명해야 한다. 우리가 신의 길을 외면하지 않았음을, 소년 안에 신이 있음을, 불을 옮기는 자에게서 역사가 시작됨을, 태초의 시작이 선의로 시작함을 신께 보여줄 때 신의 노여움은 풀릴 것이다.
 멸망한 세상에서 ‘인간다움’을 지키며 선한 의지로 걷는 한 걸음이 묵직하다. 남자가 가려는 남쪽에는 약하지만 서로를 돌보며 선함을 지키려는 인간들이 모여들며 들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죽어가는 아버지를 이어받듯 선한 가족의 돌봄이 소년에게 이어지는 기적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노예를 이끌고 인육을 먹는 자들이 북을 향해 걷는다면 그들을 거슬러 남쪽에는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서서히 붕괴하는 문명에 대한 끔찍하고 준엄한 소설을 쓰기 위해 인간 감정의 가장 어두운 곳까지 걸어 내려갔다’는 책 뒤표지 서평에 이끌려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빛으로 하늘이 덮혀 있지 않아도 먹을 것이 풍부하고 각종 편의시설이 즐비한 오늘의 삶이 버거운 사람이 많다. 하지만 사랑의 온도탑 온도가 낮아서 그동안 모은 2000만원을 기부했다는 익명의 80대 여성의 신문 기사를 읽으며 희망을 찾는다. 어둠 속에서 빛을 찾으려는 아버지의 투쟁은 많은 독자와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로드’는 2007년 미국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영화 ‘더 로드’(2010년)로도 만들어졌다. 지치고 힘들었던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소년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던 로드를 읽는 것을 제안한다.

이순옥<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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