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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수레의 책
  • 안산신문
  • 승인 2023.12.27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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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소설가>

독서 모임에서, 책 읽기를 지도한지 10여 년이 되었다. 처음 한 달에 한 권씩 시작할 때는 마음이 급했다. 하루빨리 많이 읽히고 싶은 마음이었다. 상황에 따라 2권씩 읽기도 하고 장편을 읽으며, 책에 나오는 지명으로 문학기행도 다녔다. 그간 읽은 책이 100여 권이 넘는다. 시간을 이길 자는 없다.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라는 고사가 있다. 사내라면 모름지기 다섯 수레에 실을 만큼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뜻으로 다독(多讀)을 권장하는 말이다. 당(唐)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시 ‘백학사의 초가집을 지나며 짓다(題柏學士茅屋)’에서 유래한 말이다.
“푸른 산의 학사가 은어를 불태우고, 백마 타고 달려가 산야에 은거하였네(碧山學士焚銀魚 白馬&#21371;走深岩居) / 옛사람은 삼 년 겨울 독서에 자족하였는데, 그대 젊은 나이에 만여 권을 읽었구나(古人已用三冬足 年少今開萬卷餘) / 맑은 하늘에 초가집 위엔 구름이 뭉게뭉게, 가을 물은 섬돌 가득 도랑으로 넘치네(晴雲滿戶團傾蓋 秋水浮階溜決渠) /부귀는 반드시 부지런히 힘써야 얻는 것이고, 남아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 책을 읽어야 하지(富貴必從勤苦得 男兒須讀五車書)”
우리가 아는 다섯 수레의 책은 아직 종이가 대중화되기 전에 사용한 고대에 나무나 대나무 조각으로 만든 기록 매체이다. 대나무 조각에 글을 썼기 때문에 글자 수는 몇 자 되지 않았다. 다섯 수레 분량의 대나무 책을 현대의 종이책으로 하면 두꺼운 소설책 한 권이 될까 말까 한 정도이다. 이는 대나무 종이에 쓰인 글씨에 비해 차지하는 부피가 얼마나 큰지 상상할 수 있다. 소설책 한 권은 하루 만에 읽을 수 있는데, 그 하루의 양을 위해 다섯 수레의 죽간과 정성이 들었다고 한다.
후한 대 환관 채륜이 종이를 개량 및 대량 생산하여 대나무 책(간독)은 차츰 그 자리를 종이에 내주었고 6세기경에 중국 본토에선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간(簡)에 글씨를 쓴 후 끈으로 각각을 연결했는데(編綴:편철) 이를 책(策)이라고 하며 우리가 늘 보는 책(冊)이 이것이다. 죽간은 재료가 대나무인데 성장이 빠르고 구하기 쉽다. 게다가 표면이 미끄럽고 희고 먹물이 잘 스며 들어 글씨 쓰기가 매우 쉽다. 그러므로 많이 이용된 것이다.
갑골, 금석, 점토 등을 사용한 기록은 수명이 반영구적인 데 비해 부피가 크고 무겁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것이 대쪽, 나무판, 비단을 이용하여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러나 대나무와 나무판은 구하기가 쉽지만, 부피가 너무 커 많은 양의 글씨를 쓸 수가 없었다.
백서(帛書)는 비단에 쓴 글 또는 글이 쓰인 비단, 비단에 써서 만든 책을 말한다. 글 쓰는데 사용하는 비단은 겸백(&#32273;帛)이라고 하며 보통 비단을 백이라고 부르며 질이 낮은 야잠사를 두 가닥으로 짠 황색 비단을 겸(&#32273;)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비단은 질이 부드럽고 가벼워 휴대와 보관이 편리하였다. 게다가 먹물이 잘 흡수되고 바탕이 힌 빛이므로 글씨가 또렷하여 선호하게 되었다. 그러나 가격이 매우 비싸 일반 선비들이 즐겨 쓰기에는 부담스러웠다.
우리가 읽은 책은 자그마치 수백 수레의 책인 셈이다. 책 속에 담긴 지혜나 지식으로 세상을 바꾸는 거창한 일이 아니어도 자신을 변화하고 삶이 정화되는 일은 엄청난 성과이다. 직업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활자중독에 빠진 나는 요즘도 화장실에 신문이나 책을 가지고 들어간다. 전자책이나 오디오 북을 휴대전화기로 읽거나 들을 수 있는데도 오거서에 해당하는 책 한 권의 질감이 더 손이 간다. 나는 오늘도 다섯 수레의 책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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