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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 있어요
  • 안산신문
  • 승인 2024.02.07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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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STILL HERE) / 클레리 아비

"나는 네가 깨어났으면 좋겠어.“/ “너……여기 있지?”/ 나 여기 있어                                                   

 “20주째 혼자 지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6주 전이다. 하지만 영원히 이렇게 지내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잠을 좀 더 많이 자면 시간이 빨리 갈 수도 있을 텐네. 생각이 멈춰버린다면. 하지만 잠을 자기 싫다.”(7쪽)
 눈을 감고도 거뜬히 묶을 수 있는 팔자 매듭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얼음산 등반 중 눈사태를 만나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엘자. 의사는 가망 없다고 가족들에게 연명 장치 제거를 권하고 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에게 청각 기능이 돌아온다. 볼 수도 움직일 수도 느낄 수도 없지만, 소리로 모든 것을 감지한다. 
 한편 티보는 음주 사고로 열네 살 소녀를 두 명이나 죽게 만들고, 그것도 모른 채 병원에 실려가 입원한 후 다음날이 되어서야 깨어난 동생이 너무 밉다. 그래서 어머니만 병실에 모셔다드리고, 자신은 엉뚱한 곳을 헤매다 자스민 향에 이끌려 엘자를 만나게 된다. 
 사방팔방 줄을 매달고 누워 있는 엘자 빌리에는 소리를 듣고 상상하는 게 전부다. 우연히 들르게 된, 티보의 마음 깊이 와닿을 만큼 다정하게 들리는 그 목소리를 점점 그리워하며 기다리게 되고…. 당연히 혼수상태에서 벗어나기를 소망한다. 6년이나 함께 살던 여자 친구가 배신하고 떠날 때, 일생일대의 타격을 입고 마음이 텅 비어 버린 티보 그라몽은 엘자가 혼수상태인 걸 알면서도, 점점 그에게 이끌려 55호실 동생이 아닌 52호실의 엘자를 만나기 위해 병원을 찾는다.
 티보도 처음에는 우연히 길을 잘못 들어 엘자를 만났지만, 점차 엘자 곁에서 위로를 받으며 그가 깨어나기를 소망한다. 심지어 동생과 처지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한다.
 소설은 등산 지도 만드는 일, 그것도 빙하지대 전문인 갓 서른 살(혼수상태 중에 서른 살 생일을 맞음)이 된 엘자와, 생태학 관련 일을 하는 서른네 살의 환경 컨설턴트 티보의 교차 서술 방식으로 흥미를 돋운다. 
 엘자의 청각이 살아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지만, 어떤 이는 아예 죽은 사람 취급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엘자가 깨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상황은 극에 치달아 있지만 소설은 의외로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 등장인물들의 이름만 아니라면 전혀 번역본 같지 않고, 우리나라 작가가 쓴 글처럼 매끄럽게 술술 읽힌다. 거기에 몸이 혼수상태인 엘자와 마음이 혼수상태인 티보의 속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 그들을 응원하게 되고, 엘자가 벌떡 일어나 둘의 순수한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학수고대하며 결코 책장을 덮을 수가 없게 된다.
 “내가 언제까지 소리만 들을 수 있는 몸으로 살아갈까 생각해본다. 완전히 깨어나는 날이 과연 올까. 나도 의사들 말을 들어서 안다. 지금 자력으로 숨도 거의 쉬지 못한다. 그들이 꼬박꼬박 검사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내 힘으로는 몇 시간밖에 버티지 못하기 때문에 의료진이 자가 호흡은 무리라고 판단했다는 것도 안다.”(60쪽)
 엘자가 깨어나 점점 깊어가는 둘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하며 책을 읽고 있는데, 티보는 동생이 병실 창문에서 뛰어내려 사망했다는 전화를 받는다. 큰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그다지 반성하지 않는 동생 실뱅이, 도무지 사람 같지 않아서 제대로 화해도 못 했는데…. 연명치료를 중단하기로 한 엘자는 오지 않는 티보를 한없이 기다린다. 엘자는 이대로 티보를 만나지도 못하고 영영 떠나야 하는 걸까?
 청각은 사람이 죽을 때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나 아직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 있다’고 외치는 엘자의 절규가 귓가에 오래도록 남는다. I’M STILL HERE

민복숙 (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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