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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배우는 시간
  • 안산신문
  • 승인 2024.03.13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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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창비)

  인간은 변하지 않았다. 기원전의 진시황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늙는 것을 피하려고 한 만큼 21세기 현대의 우리도 그렇다. 불로초가 현대의학이라는 잡힐 듯한 것으로 대체되면서 현대인에게 죽음은 피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유명한 연역법의 예문처럼 인간은 모두 죽고, 우리는 인간이며, 따라서 우리가 죽는다는 것은 확고한 진리임에도.
  우리는 병에 항상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무엇을 피하면 그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병균이나 독성물질에 의한 몇 가지 질환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그 원인이 명확히 밝혀져 있거나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 인과관계가 단순한 질환은 없다. (137쪽)
 저자 김현아 교수(한림대학교 류마티스내과)는 한국 류머티즘 연구를 대표하는 의학자다. 건강하게 사는 일과 죽음을 배우고 준비하는 일이, 똑같이 중요하다고 전한다. 하지만 현대의학이 늙음과 죽음을 치료해야 할 질병처럼 호도하면서 오히려 죽음을 덜 준비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우리에게는 <죽음을 배우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철학적 제목과 달리 이 책은 의사로 일하면서 겪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신에 그 이야기에 숨겨져 있는 죽음에 대한 철학적 문제는 독자로 하여금 곱씹어 보도록 한다. 책은 어려운 것 없이 술술 읽히지만 생각은 술술 풀리지 않는다. 결국은 우리가 보지 않으려 눈 감고 있던 문제 주변을 맴돌게 된다. 그 문제는 이것이다.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 좋은 죽음은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한국에서는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 시행되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는 있게 되었지만, 아직 악물 투여 등을 통한 조력 자살이나 안락사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또한 법률 자체의 내용도 미진하여 실효성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환자의 고통과 가족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좋은 죽음을 선택하고 싶어도 법적인 한계가 있는 것이다. 법도 죽음에 대한 생각 자체를 막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병원에서는 이미 사망상태로 발견된 환자도 그저 법적인 책임을 피하기 위해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있다. 의료진들은 그런 경우를 일컬어 CPR이 아니 ‘쇼피알’, 즉 보여주는 CPR이라는 말을 한다. 당연히 쇼피알의 생존률은 0이다. ... 결국 병원에서 환자가 숨을 거두면 어떤 상태로 발견되든 일단 심폐소생술을 시행해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의사가 과실치사, 심지어는 살인으로 몰릴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253쪽)
  책 속에 그려지는 의료현장의 모습은 공포스럽다. 무의미한 생명연장이 관습화되고 있는 그 곳은 실제적인 의료지원의 현장이 아니라 죽음의 의식을 치르고 있는 종교단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CPR을 하는 의사에게도, 당하는 고인에게도 득될 것 하나 없는 ‘죽음의 의료화’(medicalization of death)는 죽음보다도 더 피하고 싶어진다. 
  죽음을 앞둔 환자가 존엄성과 사생활을 존중받고 죽음에 대한 결정권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고, 한편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는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데?’라고 물었을 때 답할 수 있는 책은 흔하지 않다. 이 책을 읽으면 예기치 않은 죽음이 닥쳤을 때 존엄성을 지키는 방법이 스위스로 떠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만의 ‘엔딩노트’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김현숙<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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