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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여정
  • 안산신문
  • 승인 2024.03.2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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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소설가>

 전국에 꽃 소식이 만발하다. 강원도에는 때아닌 폭설이 내려 눈꽃을 피우기도 한다. 요즘 날씨는 변덕스럽지만, 화엄사 황매 앞에는 비가 오거나 새벽이거나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새벽에는 일반인의 절 입장이 안 되지만 등산길에서 들어오거나 템플스테이 하면서 절에서 묵는 사람들이 매화 앞에서 서성인다. 봄에 가정 먼저 피는 매화에게서 좋은 기운을 받고자 하는가 보다.
 매화는 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향기를 가지고 있어 멀리서도 향을 느낄 수 있다. 매화꽃을 함께 보고 함께 향기를 나누고 싶게 하는 식물이다. 화엄사나 통도사 등 유명한 절 마당에는 봄에 가장 먼저 핀다는 황매가 있어, 스님의 마음뿐만 아니라 속세에 사는 우리의 마음도 일렁여 모두 절 마당으로 모여들게 하였다.
매화는 눈 같고 눈은 매화 같아서
흰 눈이 닥치면 매화 꽃 필 것이니
이것이 천지 기운에 매화 보러 오시오
매화여설설여매(梅花如雪雪如梅) 
백설전두매정개(白雪前頭梅正開) 
지시건곤일청기(知是乾坤一淸氣) 
야수답설간매래(也須踏雪看梅來) 
지은이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 조선 전기 문신이자 학자이다. “이것이 이 천지에 한 가지 맑은 기운임을 알겠네(次尹洪州梅花詩韻兼東吳君子)”라는 칠언절구의 시로 매화의 고고한 기상과 맑은 기운의 매화를 보러 오라고 노래했다. 화자는 자기의 심회를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 시에 가득 담고 있다. 이것이 천지에 맑은 기운이라면서 모름지기 눈을 밟으면서 매화 보러 오라고 한다. 눈을 밟고 피어나는 기상이 매화 아니고 누가 있겠느냐.
 옛 문인들은 봄에 눈이 오니 천지 기운에 가득한 매화가 곧 필 것이니 매화를 보러 오라고 한다, 우리도 매화를 보러 나섰다. 새벽에 이 칠언절구 시에 걸맞게 천지에 안개가 자욱하고 눈보라가 몰아쳤다. 춘삼월에 내리는 눈은 금방 녹았지만,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 과연 매화가 피었을까? 매화가 피었다면 이 눈보라에 매화가 다 떨어지지나 않을까 염려가 가득했다. 우리는 눈길에 매화를 보러 가는 설렘이 좋았다. 그러나 어렵게 도착한 절 마당의 매화 앞에는 소란스러움만 가득했다. 사람들은 순서를 기다려 사진을 찍고 절을 하기도 낮은 곳의 꽃잎을 따기도 하였다. 고고한 기상의 외로운 매화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서정은 책에서나 느낄 수 있고 현실의 우리는 겨우 한 장 찍었다. 그것도 매화 주변에 오가는 사람들을 배경으로 하면서 말이다.
 매화 축제를 하지만 아직 매화가 덜 핀 탓에 사람들은 황매가 만발한 절로 모여든 것이다. 오히려 매화가 피려고 하는 산동네를 거니는 것이 오히려 더 매화를 느낄 수 있었다. 날씨는 서늘하고 인적이 드문 길가에 매화나무가 가득 향기를 매달고 있는 풍경에 빠졌다. 우리는 이렇게 매화를 보러 오라는 시에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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