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현재 유쾌한 이미지로 가장 유행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바로 “의리(義理)”입니다. 지난 5월 초에 배우 김보성 씨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의리’를 외치면서 시작된 “의리” 열풍은 어느덧 수많은 패러디나 유머까지 양산하고 있습니다.

많은 연예계 평론가들은 이러한 “의리” 열풍을 보면서, 처음에는 의아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보통 한 아이템이 유행하기 위해서는 유명한 사람이 하거나,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색다름이나 신선함이 있어야 하지만, 김보성씨가 외친 ‘의리’는 이런 조건에 하나도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선 그는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왕년에는 잘 나갔던 청춘 스타였지만, 젊은 사람들에게는 그저 무명 배우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출연할 때마다 선글라스를 쓰고 ‘의리’를 외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외치는 ‘의리’는 절대로 색다르거나 신선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처럼 흥행할만한 요소가 없었던 ‘의리’가 이렇게 유행하게 된 이유를, 많은 문화평론가들은 배신이 팽배한 우리 사회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나온 드라마나 영화를 보십시오. 대부분의 작품들이 배신으로 이루어져있다. 저는 이것을 단순히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장치로 보지 않습니다.

시청률도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어야 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드라마나 영화가 그리고 있는 배신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에 의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조직폭력배나 학교의 일진들을 보면, 그들은 말 그대로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습니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조직원이 다른 조직 사람에게 공격을 당하면, 그 즉시 대동단결하여 보복합니다. 또한 자신의 조직원이 탈퇴하려고 하면, ‘의리를 저버렸다’고 분통해하고 보복합니다. 배신이 판치는 우리 사회 속에서 얼마나 눈물 나는 ‘의리’입니까?

또한 우리나라의 정치권에서도 이런 ‘의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분쟁거리가 생기면 어떨 때는 여당과 야당이 각각 대동단결하여 패싸움을 벌이고, 어떨 때는 입으로 대동단결하여 서로 기싸움을 합니다. 그 뿐입니까? 최근에 사회문제로 부각된 ‘관피아’도 결국 권력과 뇌물을 나눠먹는 상급 공무원들의 ‘눈물 나는 의리’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또한 유병언을 보호하기 위해서 최근에 구원파가 보여주는 ‘우리가 남이가’ 식의 의리는 눈물이 나다 못해서 웃기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 의리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의리”를 그리워합니다. 왜일까요? 그 의리가 추구하려는 가치, 즉 의리의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조폭과 일진들의 의리, 정치권과 관피아의 의리, 구원파의 의리는 남을 해치고 자기 이익을 취하려는 방향을 갖고 있습니다.

즉, 남이야 망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이기주의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의리를 진정한 의리로 보지 않습니다. 이런 의리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 언론에서 시민 100명에게 “우리 사회에서 의리가 없어져야 할 곳”이란 주제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 세대가 하나 같이 정치권과 공공기관을 꼽은 것도, 그 의리의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의리를 회복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의리의 방향, 즉 의리가 의도하는 가치입니다. 우리가 어떤 의리를 회복해야 할까요? 남의 돈을 빼앗고 권력을 누리기 위한 의리가 아니라, 기쁨은 나누고 아픔은 위로하고 때로는 서로에게 조언하면서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의리를 회복해야 합니다.

이러한 의리의 방향이 회복될 때, 그 모임은 패거리가 아니라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부터 따뜻한 말 한마디, 따뜻한 행동,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진정한 의리를 회복해봅시다.
 

우리안산넷  webmaster@ansansm.co.kr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